Dong-gu story
동구이야기
동별 지역 유래
금창동
1985년 11월 인천시 조례에 따라 금곡동과 창영동이 합치면서 두 동네의 앞 글자를 따서 금창동이라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중심지였던 영화학당(영화초등학교), 3·1운동발상지인 창영초등학교가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여선교사합숙소(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가 있고, 완구 문구 도매상가 및 배다리 헌책방거리, 공예 상가가 위치해 있다. 1917년 최초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있던 곳이다. 창영초등학교(구)교사(제16호), 인천기독교 사회복지관(제18호)는 인천시문화재로 문화와 전통이 있는 지역이다.
만석동
만석동은 전체 면적의 약 58.9%가 공장용지로 조선소, 목재공장, 보세창고 등이 해안지역에 많은 편이다. 해안일대의 친수공간 조성 등 개발 잠재 지역이다. 만석부두와 작은미술관인 우리미술관이 있으며,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작약도에서 이름이 환원된 물치도가 만석동에 속해 있다.
송림동
법정동이자 5개 행정동(송림1동·2동·3.5동·4동·6동)의 통칭이다. 동구 생활의 중심지로 지리적 중앙이며, 금융, 상권이 집중되어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송림동은 옛날에는 다소면 송림리로 이 지역은 가장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송림’이란 마을 뒷산인 만수산(현 수도국산)의 소나무가 많다는 뜻으로 지형에 의해 송림1동은 송림골로 불리었다. 1946년 9월 정부수립 이후 인천부 송림정을 인천시 송림동으로 개칭하였다. 만수산이라는 얕은 산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 상수도를 관리하던 수도국이 산 정상에 있어 이후 수도국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송현동
‘소나무[松] 고개[峴]’라는 뜻으로 수도국산이라 불리는 만수산(송림산)의 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불리게 된 이름이다. 양키시장이라 불리는 중앙시장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주로 파는 시장이었으며, 건너편에는 송현시장이 있고, 송현시장을 따라 올라가면 송현근린공원과 서민들의 애환 어린 삶을 옮겨놓은 수도국산박물관이 있다. 양키시장 앞 대로변에는 동구의 유일한 극장인 미림극장이 있으며, 바닷물이 들고 나는 수문통이 있었으나 복개되었다. 이 수문통을 다시 열어 물길을 조성하자는 논의가 되고 있다.
화수동
화수부두를 인접하고 있으며 대기업들이 임해공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병인양요 이후 외국함대의 침입을 대비해 1879년 설치한 화도진이 있다. 화도진지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지 주변으로 화도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개항자료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화도진도서관이 그 옆에 자리하고 있다.
화평동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화촌동(花村洞) 일부와 평동(平洞)이 합쳐지며 두 동네 앞글자를 따서 화평리라 불렸다. 화촌동은 꽃마을이라는 뜻이지만 꽃과는 상관없이 곶(串)형태여서 ‘곶마을’로 불리던 것이 꽃마을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본다. 평동은 평평한 마을에 동네가 있어 우리말로 ‘벌말’이라고 불리던 곳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장면박사의 생가 터가 있으며 '세숫대야냉면'으로 공장 노동자들,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냉면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