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gu story
동구이야기
노동자의 길

수도국산박물관

5만5천평에 1천8백채의 꼬방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다.안방, 건넛방, 마루 할 것 없이 창문을 열면 달과 별을 볼 수 있었던 동네.
서울의 난곡과 쌍벽을 이루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달동네 수도국산은 1998년부터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에 들어갔고 송현동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터전을 내주고 밀려나갔다. 그 자리에 3천 가구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 솔빛마을이 들어섰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들의 애환이 담긴 살림살이들은 2005년에 개관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 남겨져 있다. 동네가 철거될 때 전국의 고물상이 다 모여 ‘진기한’ 물건들을 수집해 갔다. 궁중이나 양반댁에서 사용된 고고한 유물이 아닌 우리 부모들이 사용했던 세간들이 ‘세월’의 때를 덕지덕지 묻힌 채 박물관으로 들어가 추억을 전시하고 있다.

골목아이들

우루루루… 왁자지껄… 깔깔깔깔…. 수도국산 서부교회 아래 골목을 달려오는 아이들이 순식간에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들은 해맑은 ‘단체스마일’로 출현했다.

이런 장면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다. 이제 골목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골목이 사라진다.
아이들도 사라지고 있다.

황해연탄

동구 송현동에 있던 ‘황해연탄’ 공장의 1960년대 중반 모습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동네 아낙들이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연탄공장으로 몰려들었다.
사람들 틈에서 한 어린 소녀가 5장의 연탄을 올려놓은 빨래판을 머리에 이고 힘겹게 걸어 나오고 있다.
아이는 저 멀리 보이는 수도국산 고개 위 집까지 몇 번은 가다쉬다하면서 오를 것이다. 당시 월동준비는 애고 어른이고 구분 없이 모든 가족에게 처절하고 간절했던 일상이었다.

고가도로

수도국산 산자락에는 1967년에 설립한 숭덕중학교가 있었다. 제 6교회와 공민학교가 모태가 된 이 학교는 82년 남동구 만수동으로 이전해 여중과 여고로 분리되어 현재 약 2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학교가 떠난 이 자리에 한 동짜리 누리아파트가 세워졌다. 얼마 전 아파트 바로 앞에 수도국산을 관통하는 터널과 고가도로가 설치되었으나 개통하지 못하고 흉물처럼 남아 있다.

송현 라이프주택

수도국산과 이어진 작은 산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산을 그냥 ‘돌산’이라고 불렀다. 한때 채석장으로 사용될 만큼 단단한 암석으로 된 산이었다. 이 산에는 황해도 등 북한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합판, 천막 등을 주워서 집을 짓고 살던 동네가 있었다.

1982년 불량주택 531채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10평에서 20평짜리의 5층 공영아파트 송현라이프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수도국산박물관222

5만5천평에 1천8백채의 꼬방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다. 안방, 건넛방, 마루 할 것 없이 창문을 열면 달과 별을 볼 수 있었던 동네. 서울의 난곡과 쌍벽을 이루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달동네 수도국산은 1998년부터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에 들어갔고 송현동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터전을 내주고 밀려나갔다.
그 자리에 3천 가구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 솔빛마을이 들어섰다.사람은 떠났지만 그들의 애환이 담긴 살림살이들은 2005년에 개관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 남겨져 있다.
동네가 철거될 때 전국의 고물상이 다 모여 ‘진기한’ 물건들을 수집해 갔다. 궁중이나 양반댁에서 사용된 고고한 유물이 아닌 우리 부모들이 사용했던 세간들이 ‘세월’의 때를 덕지덕지 묻힌 채 박물관으로 들어가 추억을 전시하고 있다.